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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사학회 뉴스레터 24호 - 오혜진 Archive Footnotes

디자인사학회 뉴스레터 24호 - 오혜진 Archive Footnotes

편집: 디자인사학회
인터뷰: 오혜진
진행: 홍주희
발행: 2025년 7월 15일

디자이너의 작가주의적 아카이브 작업을 조명하는 이번 연재 주제는 ‘그래픽 디자이너의 전시 구성’입니다. 오혜진 디자이너님이 Stedelijk Museum에서 진행한 《BHLNTTTX》 전시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Q1.《BHLNTTTX》 전에서는 이전에 진행했던 작업들을 새로운 맥락 속에서 다시 구성해 전시하셨습니다. 디자이너로서 본인의 기존 결과물을 어떤 기준과 태도에 의해 전시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최근 한유주 소설가가 쓴 『계속 읽기』에서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과 출신이라, 무언가를 읽었을 때 어떤 답이 내려지길 원합니다. 우리가 이 작품을 통해 어떤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세상의 본질이 애매함이며, 문학은 늘 애매한 질문을 던지고, 고통스럽게도 답 없는 질문을 해결하지 못해 찝찝한 기분을 느끼는 독서에 익숙했던 나는 시원한 답을 내놓을 수 없어 당황스러웠다. - 한유주, 『계속 읽기』 (마티: 2025) 31p

고백하자면 전시를 열고 이게 무슨 작품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런 기분이었습니다. 이전 작업들을 모아서 새롭게 구성한 무언가이긴 했지만, 뾰족한 논리로 특정 작업의 어느 부분을 선별하거나, 명확한 이유로 이미지를 나열하거나 결합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뚜렷한 기준을 벗어난 모호한 ‘구멍’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기존 작업들은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나 포스터 등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따라서 디자인적 선택 대부분은 내용에 근거한 명확한 이유가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작업을 하다 보면 텍스트가 잘리거나 이미지가 재조합되면서 원본의 내용이 소실되고 시각 요소 그 자체에서 발견되는 즐거움 역시 있곤 합니다. 이를테면 크롭으로 인해 잘려 나간 문장의 일부가 아리송함을 만들어내 상상력을 촉구하게 된다든지, 감리를 보러 갔다가 본 책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전지에서 터잡기로 인해 만들어지는 전혀 다른 이미지 조각 모음에서 새롭게 생성되는 풍경 같은 것들 말이죠. 그러한 풍경은 어절 사이에 구멍이 많아 문장의 맥락에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해석의 여지를 넓히는 시와 같다고 느껴집니다.
이러한 태도는 전시 제목에서도 드러나 있습니다. ‘BHLNTTTX’는 영어 단어 ‘Exhibition Title’에서 모음(a, e, i, o, u)을 제거하고 남은 자음을 알파벳순으로 재배열해 만든 조어입니다. 많은 분이 이 제목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헷갈리셨지만, 저는 오히려 그 모호함이 이번 전시의 핵심과 잘 맞닿아 있다고 느꼈어요.
‘BHLNTTTX’는 기존 내용을 해체함으로써 원본의 맥락을 소실시키고 새로운 결과물을 제안하는 방식과 닮았습니다. 전시 제목조차도 하나의 시각 실험이자 재편집의 결과물처럼요. 어떤 관객은 “부르르투르”처럼 재미있게 읽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냥 알파벳을 나열해 읽기도 했는데, 그 다양한 상상 자체가 이번 전시에서 추구한 태도를 반영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Q2. 《BHLNTTTX》 전은 성격이 다른 세 작업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나란히 전개되며, 반복과 변주, 배치 방식에서 리듬감 있는 흐름을 만들어냅니다. 각각의 작업은 전시 공간의 특성에 맞춰 어떻게 구성해 나가셨는지 궁금합니다.
이 전시는 공간의 특성이 굉장히 강하고 설치에도 제약이 많았기 때문에 공간에 설치할 수 있는 매체를 먼저 정하고, 그 매체를 통해 작업을 어떻게 보여줄 것이냐로 과정이 진행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해당 매체에서 비롯된 기법, 제작 방식, 형태의 근거 등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작품은 계단 쪽 벽에 타일링하여 설치된 A4 인쇄물 작업, 7개의 아치 벽에 부착된 벽지 작업, 4개의 스크린 작업 총 세 종류입니다.
A4 타일링 작업은 전단지 부착 금지라는 전시 시리즈 명에 걸맞게 통로 벽을 온통 전단지로 뒤덮고 싶다는 상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단지들을 전시장 벽뿐 아니라 미술관 앞의 거리에도 실제로 붙이고 싶다는 상상까지 했었는데 그것까진 차마 실행에 옮기진 못해서 조금 아쉽습니다.
전단지 안에는 기존 작업들을 해체하고 랜덤하게 조합한 이미지들을 담았습니다. 사실 전시에 필요한 것은 이미지별로 단 한 장의 인쇄물이었지만, 저는 스텐실이나 옵셋처럼 복제 방식 인쇄에서 발생하는 미감을 선호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 모순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아보기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 우선 기존 작업들을 100% 실사이즈로 전지 16면 위에 랜덤하게 나열하여 128페이지 책 200권가량을 제작하였습니다. 전지 상태에서 레이아웃을 진행했기 때문에 종이가 접혀 책이 되었을 때의 페이지 순서를 의도적으로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그중 10권의 책등을 잘라 낱장 인쇄물을 만들었고, 작업들의 일부를 크게 키워 46종의 그래픽을 만든 후 1,280장의 낱장 인쇄물 위에 리소로 출력하였습니다. 100% 사이즈의 작업과 줌인 된 작업 두 그래픽이 랜덤하게 맞물리도록 하였고 인쇄물을 통로 벽 전체에 배열할 때도 순서를 특별히 지정하지 않은 채 색상이 너무 겹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배치하였습니다.
나머지 190권의 책은 전시 바깥에서 배포됨으로써 확장된 의미가 있습니다. 결국 이 작업은 ‘내가 어떤 작업을 해왔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기보다는, 책이 가진 물리적 구조와 인쇄 기법을 활용해 해체와 조합을 재탐색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설치하던 날 (아마도 미술관의 예술보존과 직원이라고 하셨던 분으로 기억합니다만) 어느 분으로부터 이 인쇄물들을 전시가 끝나면 회수해 갈 거냐던 질문을 받은 기억이 나요. 대량 복제품은 원본의 개념을 가진 것이 아니기에 저는 전시가 끝나면 버려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전시장에 걸려 있던 인쇄물이라는 공간적 상징성은 발생하겠습니다만, 사실 제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똑같은 것을 다시 만드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었으니까요. 연약한 인쇄물을 벽에 장시간 걸어두는 전시였기 때문에 혹시 모를 훼손에 대비해 여분의 인쇄물을 당시 추가로 만들어 두기도 했었습니다. 흥미로운 질문이었고, 그렇다면 대량 복제가 가능한 작업을 굳이 미술관이라는 장소에서 보여 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나머지 두 작업은 통로 공간과 좀 더 밀접하게 고안된 작업으로, 전시 장소가 미술관 통로였다는 점에서 ‘목적지’가 아닌 ‘경유지’라는 점이 작품 구상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의 이동 경로에 있는 이 통로 속에서, 작업들은 잠깐 스쳐 지나가는 시선 속에서 멈춤을 유도하거나, 공간의 인상을 바꾸는 장치로 작동하고자 했어요.
먼저 7개의 아치 벽에 설치된 벽지 작업은 각 벽을 서로 다른 형태의 그리드로 쪼개고, 그 위에 그래디언트를 입혀서 각기 다른 분위기와 밀도를 구성한 것입니다. 처음엔 이 공간을 비워두려고 했지만, 큐레이터의 제안으로 공간의 무드를 환기하는 요소로 작동하게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공간의 장식이자 배경을 위한 벽지로 기능하고 있는 셈이죠.

4개의 스크린에 송출되는 작업은 스크린세이버라는 기생적 특성을 떠올리며 진행하게 된 작업입니다. 통로 공간이 목적지가 아닌 경유지라는 점에서 어딘가에 껴 있는 느낌이 들었죠. 스크린 세이버의 화면이 그 상황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상상이 되었고 각 화면마다 사운드도 넣어 통로의 소음과 뒤섞이는 풍경을 연출해 보고자 했어요.
이를 위해 화면에는 픽셀화로 인해 원본이 완전히 소실된 그래픽 조각들이 글리치 화면처럼 뒤섞이는 이미지가 송출되도록 했고, 각 원본 이미지의 제목을 낭독한 사운드를 마찬가지로 변형시켜 이미지와 함께 구성했습니다. 시끄러운 통로 공간의 소음에 이 사운드는 자연스럽게 섞이며, 시각뿐 아니라 청각을 통해서도 공간의 분위기를 구성하게 했습니다.

정리하면 전시 자체가 하나의 논리적 서사 구조라기보다는, ‘여러 겹의 해체된 질서’들이 나란히 놓여 서로 다른 리듬을 만들어내는 방식에 가까웠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제가 당시 관심을 갖고 있던, ‘그리드를 해체하고 다시 조직하는 방식’—완벽함보다는 어긋남에서 생겨나는 우연성과 가능성에 대한 관심—과도 맞닿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Q3. 전시가 미술관 입구 통로라는 독특한 장소에서 진행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오가며 스쳐보는 환경에서 작업을 설치한다는 점이 디자이너로서 낯설게 느껴졌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러한 공간적 조건 속에서 어떤 고민이나 시도들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통로에서 전시한다는 맥락 자체는 사실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이 전시 시리즈의 이름이 ‘Post/No/Bills’인데 ‘전단 부착 금지’라는 뜻이에요. 그런 이름을 단 전시가 오히려 디자이너들에게 “마음껏 붙여라.”라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면서도 재밌었어요. 따로 큐레이터에게 직접 네이밍의 이유에 대해 들은 건 아니었지만, 제가 추측하기로는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분야는 본래 화이트 큐브 같은 전시장보다는, 거리나 서점, 혹은 온라인 같은 유동적이고 공적인 공간에서 보이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통로’라는 장소—즉,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공공장소—는 그래픽디자인의 물성과 태도를 보여주기에 오히려 적합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설치에 관해 어려움을 느낀 부분이 많았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어쩌다 보니 전시할 기회가 생기면서, ‘공간에서 작업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되었는데, 그게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저는 주로 책이나 포스터처럼, 인쇄 매체를 다뤄온 디자이너인데 생각해 보니 책이나 포스터 그 자체를 만드는 것까지만 주로 했지, 책과 포스터를 공간 안에서 어떻게 인스톨해서 보여줄 것이냐는 고민해 본 적이 거의 없었던 거에요.
또한 지금껏 다뤄온 인쇄 매체들은 정보 전달이 목적인 경우가 많은데 전시 공간에서는 오히려 ‘정보’보다는 ‘분위기’나 ‘감각적 인상’이 더 중요하게 작동하더라고요. 그 이유는 아무래도 스케일과도 관련이 깊다고 느껴졌습니다. 저는 평소 mm나 cm의 단위가 익숙한데 공간 안에서 작품을 보여줄 때는 다루는 단위가 미터(m) 단위로 훨씬 크기 때문에 가시거리가 멀죠. 여백과 목차가 굉장히 복잡한 책을 만드는 기분이랄까요. 또한 몸을 움직여 가면서 어떠한 찰나 동안 동선을 따라 작품을 파악하기 때문에 설치의 분위기를 어떻게 형성할 것이냐가 중요하게 느껴졌어요. 그러나 ‘분위기’라는 게 빛, 재료, 텍스처, 소리 같은 감각적 요소들처럼 제가 평소에 사용하는 시각 언어나 도구와는 전혀 다른 영역이라, 낯설고 막연하고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전시도 어렵게 느꼈던 점들이 많지만, 안 해본 걸 해보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저는 오히려 어려움에서 흥미를 느끼는 성향이라 이러한 계기를 통해 ‘시각 언어가 공간에서 어떻게 작동할 수 있을까’에 대한 관심을 두게 되었어요. 앞으로의 작업에서 이러한 질문에 관해 더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Q4. 디자이너로서 전시 활동도 꾸준히 이어오고 계시는데요, 그래픽 디자이너에게 ‘전시’란 어떤 의미인지도 함께 듣고 싶습니다.
전시를 위한 작업의 경우 커미션 디자인과 달리 ‘작가’라는 타이틀 아래 결과물에 대한 절대적 결정권을 갖게 된다는 큰 특징이 있겠습니다만 사실 그 외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특정 기획전에 참여할 때 더더욱 구조적으로 커미션 작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요. 작업의 출발점이 외부에서 온 것이고, 제한된 예산 내에서 주어진 맥락이나 조건 아래 작업이 진행되기 때문이죠. 따라서 그 둘의 차이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전시든 커미션 디자인 작업이든, 중요한 건 자신의 작업에서 어떤 비평적 질문을 하게 되었냐라고 생각해요. 저는 무언가를 만들고 나서 그 결과물에 대해 완성이라고 느껴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항상 이번에 만든 게 어떤 의문이나 새로운 생각의 씨앗을 생성시켰고, 그 씨앗이 다음에 무엇을 할지를 이어 나가게 해주곤 하거든요. 따라서 뭘 만들든 늘 과정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하는 대부분의 전시는 그래픽 디자인에 대해 말합니다. 전시는 대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는 장이지만 전시하는 작가의 위치에 섰다고 해서 그래픽 디자이너가 갑자기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직능에 대해 말하거나, 책, 포스터, 웹사이트와 같은 자신이 다루는 매체에 관해 말하거나, 혹은 제작이나 도구 등과 같이 디자인적 프로세스 등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보여요. 다시 말해, 그래픽 디자인은 외부와 함께 작동하는 영역인데 전시에서는 그 외부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온전히 혼자 출발하게 되므로 그것을 역으로, 개인적 주체가 외부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로 방향을 바꾸어 자신의 관점을 좀 더 내밀하게 드러내는 이벤트라고 느낍니다. 저도 그러한 태도로 전시했던 것이구요.
그러나 그래픽 디자인 전시가 가진 역사나 시간은 아직 너무 짧으므로 앞으로 전혀 다른 무궁무진한 형태, 다뤄본 적 없는 낯선 소재 등에 관한 새로운 전시들이 앞으로 만들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도 다음 전시는 전혀 다른 형태의 것을 해보고 싶고요. 어쨌든 저에게 전시는 ‘완성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자리’라기보다는, 꾸준히 꼬리를 물며 생성되는 질문들에 관해 사유하고 실험하는 시간에 가깝습니다.